역사소설(3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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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일주일에 한권] 칼의노래_작가김훈
목이야 어디로 갔건 간에 죽은 자는 죽어서 그 자신의 전쟁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. 이 끝없는 전장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, 이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인가. 내몸의 깊은 곳에서, 아마도 내가 알 수 없는 뼛속의 심련에서, 징징징,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 했다.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,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이었다.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. 그것이 아마도 살 길이다. 살 길과 죽을길이 다르지 않다. 세상은 칼로써 막아낼 수 없고, 칼로서 헤쳐나갈 수 없는 곳이었다. 칼이 닿지 않고 화살이 미치지 못하는 저쪽에서, 세상은 뒤채며 무너져갔고, 죽어서 돌아거는 자들 앞에서 칼은 속수 무책이었다. 목숨을 벨 수는 있지만 죽음을..
2021.09.13 -
[일주일에 한권] 현의노래_작가김훈
우륵: 소리에는 무겁고 가벼운 것이 없다. 마르지도 않고 젖지도 않는다. 소리는 덧없다. 흔들리다가 사라지는 것이다. 그것이 소리의 본래 그러함이다. 소리는 사는 일과 같다. 목숨이란 곧 흔들리는 것 아니겠느냐. 흔들리는 동안만이 사는 것이다. 금수나 초목이 다 그와 같다. 살아서 들릴 때만이 소리이다. 니문: 하오면 어째서 새 울음 소리는 곱게 들리고 말 울음소리는 추하게 들리는 것입니까? 우륵: 사람이 그 덧 없는 떨림에 마음을 의탁하기 때문이다. 사람의 떨림과 소리의 떨림이 서로 스며서 함께 떨리기 떄문이다. 소리는 곱거나 추하지 않다. 니문: 소리가 곱지도 추하지도 않으면 금이란 대체 무엇입니까? 우륵: 그 덧없는 떨림을 엮어내는 틀이다. 그래서 금은 사람의 몸과 같고 소리는 마음과 같은데, 소리..
2021.07.22 -
[일주일에한권] 남한산성
인조 14년 병자년, 그해 겨울, 갈 수 없는 결과 가야하는 길은 포개져 있었다. 죽어서 살 것인가, 살아서 죽을 것인가 예판 김상헌의 말 전하,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.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.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,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.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. 이판 최명길의 말 전하 죽음은 견딜수 없고, 치욕은 견딜수 있는 것이옵니다. 그러므로 치욕을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. 군병들이 기한을 견디듯이 전하께서도 견디고 계시니 종사의 힘이옵니다. 전하, 부디 더 큰것들도 견디어 주소서 제발 예판은 길, 길 하지 마시오.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오.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이오 예판 김상..
2021.07.14